크로스로 연재 "교사를 꿈꾸는 이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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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10월 28일
- 4분 분량
우리는 언제까지 꿈을 이야기 할 수 있을까. 학생들은 저마다 자신들이 나중에 펼치고 싶은 소중한 꿈을 그리고 싶어한다.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그 일만 생각하면 가슴이 뜨거워 지는 일을 발견하고 싶어한다. 그 꿈을 찾아 가는 길은 누구나 거치는 인생의 과정이다. 보통 학창시절에 그 꿈을 꾸다가 대학이라는, 혹은 취업이라는 현실앞에서 어느새 학창시절 품었던 꿈이 희미해져가는 것을 보면서 또 친구와 직업을 비교하며 ‘패잔병 의식’에 빠지기도 한다. 주변에서도 전공과 무관한 일을 하는 경우가 허다하게 보인다. 현재 소명중고등학교에서 근무하는 필자 역시 학창시절에 선생님이 어떤 경로로 되는 것인지 잘 알지도 못한채 교사가 꿈이라고 말했다. 오늘은 교사가 꿈인 학생들을 위해 교사로 살아가고 있는 삶을 나누고 싶다.
왜 교사가 그토록 하고 싶었을까. 선생님의 ‘사랑’ 때문이었다. 주일학교에서 나를 사랑으로 품어준 박문선 선생님에 대한 기억은 교사로서 학생을 어디까지 살펴줘야 하는 것인지를 생각하게 했다. 중학교시절 테니스부에서 만났던 호랑이 체육 이득규 선생님은 바른길을 가도록 잡아준 엄한 ‘사랑’도 귀한 사랑임을 일깨워져 잊을 수 없다. 수학을 못해 수학시간 칠판만 열심히 지웠던 내게 성실하다며 나의 태도를 칭찬해주며 따뜻한 격려를 했던 선생님의 ‘사랑’ 역시 잊을 수 없다. 그러면서 나도 선생님이 되야지라고 막연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누구간 내게 교사의 가슴에 한 단어를 집어 넣을 수 있다고 한다면 무슨 단어를 선택할 것이냐 묻는다면 주저없이 ‘사랑’을 넣으라고 말할 것이다. 그 사랑을 경험해 보았기 때문이다. 학창시절 뛰어난 성적은 아니었지만 나의 자존감은 학교와 교회에서 받은 사랑으로 뿌리를 깊게 내렸던 것 같다. 사실 ‘사랑’은 어느 직업에 종사하던지 그 일을 하는 사람의 마음에 들어가야 할 단어이다. 제자를 만나는 교직은 ‘사랑’이라는 단어를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는 직업이다. 한국 교육 회복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교사들의 마음에 어떻게 ‘사랑’을 채워주느냐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십자가 보혈의 예수님의 조건없는 ‘사랑’을 경험하고 그것을 제자들에게 흘려보낸다면 한국 교육에 큰 변화가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그런데 현재는 학교에서는 ‘사랑’을 이야기하면 무언가 철부지의 허무맹랑한 소리로 여긴다. 제도가 바뀌어야 한다. 교사의 전문성을 키워야 한다. 현실적인 논의가 주를 이룬다. 하지만 교사를 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교사들의 매마른 영혼을 어떻게 ‘사랑’으로 채워넣을 것인지가 가장 근본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교사를 꿈꾸는가. 그렇다면 ‘사랑’을 충분히 경험하고 나눌 준비를 해야한다.
크리스천 교사의 마음은 사랑으로 채우고 흘려보내야 하겠지만, 제자들의 눈에는 교사인 내 삶이 보일뿐이다. 교육이 실패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제대로 못 가르쳐서 일까. 아니다. 그것은 무엇을 강조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교사 자신이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교사가 먼저 변화되야 한다. 원리는 간단하다. 기독교 학교에서 말씀의 중요성을 가르치고 싶다면 교사의 큐티교재가 깨끗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기도를 가르치고 싶다면 교사가 기도의 자리에 사모함을 가지고 나와야 하는 것이다. 성경에서 변화된 수많은 인물들은 주옥같은 말보다 변화된 인생을 남겼음을 기억해야 한다. 이 부분은 내가 끊임없이 스스로 싸워나가고 있고 앞으로도 교사로 서있는 동안 중요시 해야할 부분이다. 교사를 꿈꾸는가. 자신을 먼저 가르치고 변화시키는 몸부림이 있어야 할 것이다.
교사를 하면서 가장큰 보람은 무엇일까. 제자들의 변화와 성숙이다. 나이를 많고 적든지 제자들이 선생님을 만나고 무언가 깨달으며 자신의 꿈에 한 발짝 다가가는 모습을 볼 때가 선생님들에게 가장 큰 동기부여가 아닐까 생각한다. ‘사랑’과 더불어 꼭 잡아야 하는 단어가 ‘제자’이다. 교사의 존재 이유는 제자들이다. 제자들이 없는 교사는 존재할 수 없다. 그래서 내가 수업 1교시 들어가는 것은 괜찮다. 양보할 수 있다. 내가 늦게 퇴근하는 것은 괜찮다. 하지만 제자들이 밥을 거르지는 않는지 화장실 이용에 불편한 것은 없는지에 대한 부분은 민감하게 반응해야 하는 것이다. 1970년대 물을 끓여 먹던시절이 있었다. 한 교장선생님은 출근하면서 식당에가서 보리차가 잘끊고 있는지, 위생상태는 깨끗한지 확인하는 것을 생명처럼 지켰다고 했다. 그 학교의 화장실을 확인하며 막힌 것을 뚫어 일하는 아저씨로 오해를 받기 했다는 일화를 들은적이 있다. 그 교장선생님의 마음안에 들어간 단어는 ‘제자’였을 것이다. ‘제자’들의 추억도 소중하다. 그래서 매년마다 학급문집을 만든다. 제자들의 1년 이야기를 더듬어 볼 수 있고, 매해 나와 만나는 학생들을 소중하게 대하고 싶기 때문이다. 한 학년이 끝날 무렵 학급문집에 들어갈 자료를 모은다. 겨울 방학내내 제작하는데 시간을 다보낸다. 그래도 시간가는 줄 모른다. 밤을새도 학생들의 손에 들려있을 학급문집을 생각하면 마냥 즐겁다. 매해 시작되는 학교 생활은 학급문집에 채울 스토리와 함께 간다고 할 정도다. 역사를 공부하며 학급에 적용하는 철학이 ‘기록이 중요하다’는 생각인데 학급문집은 작지만 역사책이나 마찬가지다. 지난 학교의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새로운 학교의 일상에 묻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간간히 학급문집을 들춰보면 한 사람 한 사람이 명확히 기억나고 그려진다. 문제아들로 낙인찍힌 제자들 중에는 남자간호사의 꿈을 꾸고 성실히 준비하기도 하고, 직업군인의 길로 들어선 제자도 있다. 학교를 그만두었지만 밤농사를 짓는 학생도 있고, 대학을 포기하고 치킨가게의 사장님이 된 제자도 있다. 그들이 이렇게 훌륭하게 자기의 길을 찾아갈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학교생활하며 날마다 씨름했던 수고가 한 방에 날아가는 기분이다. 나와 만난 제자들이 사회에 한 부분에서 책임감 있게 열심히 사는 모습이 그렇게 좋을 수 없다. ‘제자’들의 삶을 관찰하며 관찰일지를 쓰기도 했다. 어린이집 수첩에서 착안하였다. 학부모 상담에 유용하다. 교사가 꿈이라면 ‘제자’가 있기에 ‘교사’가 존재한다는 생각을 명심해야 한다.
현재 나는 소명중고등학교에서 근무하고 있다. 이곳에서도 제자들은 다양한 진로를 꿈꾸며 하나님의 부르심을 찾아가기위해 공부하며, 노력한다. 하나님은 나를 어떻게 사용하실까. 기대하고 있다. 마음속에 철칙이 있다. ‘사랑’,‘자기변화’,‘제자’이다. 이 세 단어는 교직을 하는 그 순간까지 가슴에 붙들고 생명처럼 가져갈 것이다. 나중에 교직을 그만두게 되는 날 내 가슴에는 교생실습 때 달았던 명찰이 붙어있을 것이다. “주님! 저를 교사로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교사를 하며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교사를 하며 제가 변화되고 성장했습니다. 교사를 하며 제자의 소중함을 깨달았습니다.” 라고 기도할 날을 꿈꾼다. 아직은 좀 더 달려야 한다. 주님의 부르심! 나는 교사다.


연재를 마무리하며 2012.9.16~ 2013.10.26일까지 1년간 연재를 하면서 뒤돌아보니 스스로 많이 성장했습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조금더 넓어진 것 같습니다. 처음 시작할 즈음에 과연 내 글을 읽는 독자가 있을까 라는 걱정과 조바심이 밀려왔었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크로스로’와 만남을 허락하신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평범한 현장교사를 통해 하나님의 뜻이 드러나게 해달라고 기도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매번 글을 쓸때마다 기도하며 평범한 교사로서 학교에서, 일상에서 글소재를 만나면 최선을 다해 풀어내려고 노력했습니다. 이제 저는 소명중고등학교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행복한 교육세상을 향해 현장에서 좀 더 씨름하고자 합니다. 주님의 부르심이 ‘교사’였기에 저는 교사의 이야기를 삶으로 써나가겠습니다. 평범한 교사를 초대해 줘서 귀한 경험을 하게 해주신 크로스로 관계자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부족한 글을 읽어주시고 격려해주신 독자분들께도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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