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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스로 연재 "7MM DAY - 소명 법(法)을 만나다" 대한법률구조공단<인천지부>탐방기

“7MM DAY – 소명 법(法)을 만나다” 대한법률구조공단[인천지부] 탐방기


소명 7MM 교육이란? 소명중고등학교 진로프로그램중에 7MM(Mind Mold)이 있다. ‘7Mind’는 하나님 나라로 회복되어야 할 7가지의 영역(정치·법조계,경제·기술계, 교육·목회계,의료·복지계,자연·인문사회계,언론·출판계,예술·문화·스포츠계)이다. 다양한 직업을 7개의 직업군으로 나눈 것이다. ‘7Mold’는 세 가지 사전적 의미를 적용한 것이다. 세 가지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학생들이 학교를 졸업한 후 나름의 준비를 거쳐 직업을 갖게 될 것이다. 어느 직업이든 직업이 존재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것이 원형적인 목적이다. 그런데 인간의 탐욕과 죄로 인해 원래의 목적이 왜곡되었다. 따라서 왜곡된 모습을 바로잡고 원래의 목적을 회복해야 한다. 이런 과정에 응답하는 것이 ‘소명calling’이다. 이 과정은 모범답안이 없다. 어느 시점에 마치는 것이 아닌 평생에 걸쳐서 씨름해야 한다. 쉽지 않은 과정이지만 의미 있는 과정이다. 삶의 존재와 이유를 발견하는 과정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소명의 학생들은 중등 마지막 과정인 9학년 때 ‘자신에 대한 이해’와 ‘은사’를 찾아가는 과정을 본격적으로 교과과정으로 배우게 된다. 고등과정인 10학년부터 본격적으로 7가지 영역과 관련된 부서로 들어가 다양한 활동을 접하게 된다. 이를 위해 매주 수요일 정규교과 시간에 7MM시간이 고정적으로 배치되어 운영된다. 담당 교사와 학생들이 함께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준비한다. 자율적이고 역동성이 있다. 한 학기에 한 번씩 전일제로 시행되는 ‘7MM DAY’가 있다. 이 날은 대다수부서가 아웃팅(outing)을 통해 관련 기관을 탐방하고, 해당 직업 종사자를 직접 만나서 인터뷰를 한다. 직업과 관련한 실질적인 정보를 얻기도 하고, 소명(calling)에 응답하는 과정이 결코 만만치 않다는 것을 눈으로 보고 느끼는 한편 보람도 크다는 현장 배움을 경험하게 된다. 더 나아가 여름과 겨울방학 기간에는 희망자에 한해서 관심분야의 크리스천기업에서 4주간 직장인이 되어 체험하는 ‘아웃턴 십(직업체험프로그램)’을 ‘더시안 교육 연구소’와 연계해서 진행하고 있다.


대한법률 구조공단? 법을 통해 약자를 돕는 기관!

지난 6월 2일 수요일이 ‘7MM DAY’이었다. 언론-출판계 학생들과 ‘7MM DAY’에 대한법률구조공단 인천지부를 탐방하기로 했다. 대한법률 구조공단 인천지부를 담당하는 강병훈 지부장은 크리스천 변호사다. 사전에 연락을 통해 탐방취지를 알리고 협조를 부탁했다. 바쁜 일정이지만 당일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준비해 주었다. 오전 10시부터 본격적인 탐방이 시작되었다. 먼저 푸근한 미소의 김효원 고객지원부장이 대한 법률구조공단이 어떤 일을 하는 곳인지 전반적인 소개를 해주었다. 법률구조공단은 “경제적으로 어렵거나 법을 잘 몰라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국민들이 적법한 절차에 의하여 정당한 권리를 보호 받을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법률구조법에 의해 설립된 복지기관입니다.”라고 목적을 이야기했다. 무엇보다 대한민국 법률구조 시스템에 자부심이 강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잘 만들어진 제도가 대한민국 법률구조공단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자부심을 갖고 일하고 있다고 느꼈다. 현재 공단은 1987년 9월 1일 설립되어 경북 김천시에 본부를 두고 있고 전국의 법원·검찰청 소재지에 18개 지부와 39개 출장소, 시·군 법원 소재지에 72개 지소가 있어서 국민의 접근성을 쉽도록 배려하고 있다고 한다. 인천지부는 변호사 6명, 공익법무관 5명, 상담직원 15명, 사무직원 6명이 근무하고 있다. 작년 한 해 45,459건의 법률상담을 진행했다. 전국적으로는 약 140만건에 달한다. 소송대리 실적은 7,643건이었다. 목적에도 밝혔듯이 상담 중에서 소송해서 승소를 할 수 있는데 돈이 없거나 법을 잘 모를 때 절차에 따라 도움을 준다고 한다. 사실 소수의 인원들이 많은 상담과 소송을 진행하다보니 실적위주로 흐르지 않겠느냐. 내실이 얼마나 있겠느냐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법적인 조언 한마디가 절실한 법을 모르는 국민 입장에서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일테니 법률구조공단 존재 자체가 고마울 것이다. 또한 법률구조공단은 경제적 약자(기준 중위소득 기준 중위소득이란 총가구 중 소득순으로 순위를 매긴 다음, 정확히 가운데를 차지한 가구의 소득을 말함.2016. 1. 1.부로 국민기초생보장법상 ‘최저생계비’라는 용어가 없어지고, 대신 ‘기준중위소득’이라는 용어가 생겼습니다. 이에 따르면 중위소득의 50% 미만을 빈곤층, 50~150%를 중산층, 150% 초과를 상류층으로 본다. 125% 이하의 국민 및 국내거주 외국인) 들에게 도움을 주기 때문에 일반 변호사의 수익을 올릴 수 없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근무하는 것 자체가 법을 통해 약자를 돕는다는 소명(calling)의식이 없다면 지속적으로 근무하기가 어렵고, 업무량도 만만치 않아 보였다. 이런 내막을 듣고보니 일과중에 소명학생들의 탐방을 허락해주고 인터뷰에 응해주는 것만으로도 소중한 시간을 내주었음에 감사할 수 밖에 없었다.

대한법률구조공단 인천지부는 법원앞 한 빌딩의 한 층을 모두 사용하고 있었다. 공간에 따라서 어떤 일을 하는지 정주희 계장이 학생들을 인솔하며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윤성묵 변호사의 솔직담백한 간증 “진정한 친구 예수님을 만나십시오!” 간략한 공단소개를 마치고 ‘인천 기독변호사 협회’에 소속되어 있고 법률구조공단에서 근무하는 윤성묵 변호사의 간증을 들었다. 일일탐방 온 학생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을까. 그는 누가복음 19:1-10절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나는 장면을 자신의 삶과 연결해 말씀을 나누었다. 그는 목회자의 가정에서 3남1녀중 막내로 태어났다. 어릴 때 명랑하게 자랐으나 광주에서 부모님이 같은 목회자에게 사기를 당하면서 가정의 경제적 어려움이 찾아왔다고 했다. 경제적으로 어려웠기에 부모님은 학교에 찾아갈 수 없었다. 선생님은 이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을 인정해주지 않았다고 했다. 방학숙제로 만들어간 과제물을 보고도 누군가 대신 만들어준 것이라며 시상에서 제외시켰다고 한다. 가정형편이 어려운 자신이 인정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 공부를 잘하는 것이었고, 인정받고 싶어서 친구들과 경쟁하며 앞만 보면서 달려갔고 마침내 서울대 법대를 들어갔다고 한다. 하지만 막상 서울대 법대생의 자부심도 잠시였고 자신보다 더 뛰어난 학생과 더 잘나고 부유한 학생들을 보게 되면서 또 다른 비교의식, 시기심, 열등감에 사로잡혀 괴로워지기 시작했다고 고백했다. 선배와 친구들의 집을 전전하며 컴퓨터 게임에 빠져들게 되었고 밤을 지새울 정도로 중독되었지만 끊을 수 없었다고 했다. 그러다보니 고시공부도 실패했고 자취집 아저씨에게도 무시당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던 중 2004년 UBF(대학생선교읽기선교회)에서 활동하는 한 선배의 제안으로 성경공부를 시작하게 됐고 성경의 참된 진리를 깨달아 가면서 영혼이 변해갔고 삶도 변해가기 시작했다. 하나님께서 복의 근원이 되도록 만들어 가신다고 믿음이 생겼다. 변호사의 길을 통해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일들을 기대하면서, 다시 사법고시 공부를 시작했고 마침내 합격할 수 있었다. 윤성묵 변호사는 하나님이 합격시켜 주신것이라는 표현을 썼다. 본인이 열심히 노력했지만 결국 하나님의 예정된 시간에 그 길을 가게 되었다는 믿음의 고백이라고 인상을 받았다. 자신을 변화시킨 성경의 진리를 후배들에게도 알려주고 싶어 후배들과 성경공부를 시작했고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고 했다. 삶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경험했기 때문이리라. 믿음의 배우자도 만날 수 있었고, 하나님이 주신 최고의 짝이라는 표현으로 아내를 만나것에 감사했다. 세자녀와 함께 가정을 이루고 분주하지만 감사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고 했다. 그는 서울대를 들어간 것 때문도 아니고, 사법시험에 합격해 변호사의 길을 가기 때문에 행복했다기 보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알아가면서 최고의 행복을 누리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그래서 진짜 친구되신 예수님을 만나길 탐방온 소명학생들에게 권면하며 간증을 마쳤다. 변호사로서의 드라마틱한 이야기나 흥미로운 이야기가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본질을 알려줬다. 윤성묵 변호사는 어느 직업을 갖게 되던지 예수그리스도를 제대로 만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권면했을 것이다. 누군가 말했다. ‘인생은 방향을 정하고 속도를 내는 것입니다. 설계도를 그리고 건물을 올리는 것입니다. 계획 다음에 실행이 있어야 합니다’ 윤성묵 변호사는 속도보다 방향의 중요성을 이야기 했다. 간증을 마치고 강병훈 지부장은 한 참 후배지만 좋은 믿음의 동역자이고 성실한 성품을 지니고 있음을 칭찬했다. 한 직장에 함께 근무할 수 있어서 감사하고, 늘 힘이 된다며 진심담아 고마움을 표현했다. 간증을 들으며 어떤 직업을 갖든지 크리스천이라면 먼저 복음에 대해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닌 가슴으로 이해하는 예수그리스도와의 인격적 만남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점심은 근처 설렁탕집에서 강병훈 지부장이 탐방온 모두를 대접했다. 손님 이상의 대우를 감사한 마음으로 받았다. 오후에는 실질적인 법조인이 되기위한 과정과 재판방청과 강병훈 변호사 인터뷰를 진행했다.


변호사는 사람을 만나는 직업, 잘 들어주고 공감해 주는 것이 중요  점심식사 후 우지원 법무관과 대화가 이어졌다. 그는 공익법무관으로 군(軍) 대체복무를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훤칠한 외모와 키 때문에 연예인인줄 알 정도였다. 함께 탐방간 여고생들의 이목을 끌었다. 사실 목소리도 아나운서처럼 잘 들렸다. 그는 법조인이 되는 과정을 알려주기에 앞서서 변호사의 이미지가 어떤지 학생들에게 질문했다. 학생들은 질문과 상관없이 얼굴만 빤히 쳐다보는 듯해서 조금 민망하기도 했지만 한 두명이 답변을 했다. 본격적으로 변호사의 역할부터 설명을 시작했다. 변호사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법이론과 판례를 바탕으로 의뢰인에게 법적인 조력자의 역할을 해주는 것이라고 했다. 못이길 사건을 이기게 해주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법의 테두리 안에서 증거에 입각해 변호를 해주는 것이라고 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간혹 등장하는 것처럼 극적인 변호를 판결을 뒤집는 경우는 거의없다고 말했다. 변호사가 되기 위해서는 현재 사법시험과 로스쿨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사법시험은 폐지가 되기로 했지만 현재 반발이 많아서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했다. 사법시험을 응시하지 않고 법조인(판사·검사·변호사)이 되고 싶다면 3년 과정의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을 가는 방법이 있다. 현재 전국에 25개의 로스쿨이 있고, 지원하는데 있어서 나이제한도 없다고 했다. 학부 전공과목과 관계없이 4년제 대학 졸업자는 로스쿨 진학을 위한 법학적성시험(LEET)을 통과하여 3년 과정을 이수하면 ‘변호사자격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는다고 했다. 그래서 학부때 다양한 분야에서 전문적인 지식을 쌓고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에 입학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그렇다면 변호사에게 요구되는 자질은 무엇이 있을까. 실력은 기본이고, 법률지식이 해박해야 한다고 했다. 사실관계를 빨리 파악해서 어떤 법리로 재항변 할 것인지가 떠오를 정도로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의뢰인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공감해줘야 함을 강조했다. 변호사가 의뢰인을 면박주고 이길 수 없다고 한다면 안그래도 억울해서 찾아온 의뢰인의 입장에서는 감정이 상하고 분노를 갖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억울한 감정을 갖고 찾아오기 때문에 듣는 입장에서 정신적 고통이 수반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사람을 상대하는 것이 변호사 직업이기에 사람과 소통하는 것이 즐겁고 친구들을 중재해주는 경험이 여러차례 있었다면 법조인의 길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도 괜찮다며 조언했다. 이어서 인천지방법원으로 이동해 재판방청을 준비했다. 우리가 방청한 재판은 형사재판이었다. ‘2심재판’이어서 판사 세 명이 재판석에 앉아있었다. 태어나서 처음 재판방청을 했고, 학생들도 재판의 과정을 직접보기는 처음이라고 했다. 법정의 분위기는 엄숙했다. 알 수 없는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판사의 한마디 한마디는 권위가 있었다. 검사의 표정은 날카로왔고 변호사는 의뢰인의 입장을 증거에 바탕으로 두고 설득력있게 판사에게 호소했다. 한 외국인은 판사의 판결에 눈물을 짓기도 했다. 밖에서는 패소한 여성의 비명과 통곡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법원의 표정은 승소와 패소에 따라 극명(克明)하게 대조되었다. 재판방청을 마치고 우지원 법무관은 인천지방법원 2층에 카페에서 탐방팀 모두에게 음료를 샀다. 안그래도 멋진데 음료까지 대접하고 궁금한 질문에 하나하나 답변을 해주었다. 학교로 돌아와서 여학생들이 법무관의 사진을 달라며 수차례 찾아왔다. 아마 학교에 교사로 섰다면 인기만점의 교사가 됐을 것이다. 다시한번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기독변호사의 길을 걸어가는 인천 법률구조공단 강병훈 지부장과의 인터뷰 ‘7MM DAY’ 마지막 프로그램은 인천 법률구조공단 강병훈 지부장과의 인터뷰였다. 인터뷰에 앞서서 그는 중국의 고사(故事)하나를 우리에게 소개했다.

고사의 교훈은 아무도 모르는 비밀은 없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돈의 유혹에 빠지는 것이 아무도 모르는 비밀일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크리스천은 고사성어까지 가지 않더라도 ‘하나님 앞에서(코람데오)’라는 기준이 있으니 매사에 투명하고 정직하게 행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한 전기기술자가 고압전류로 사고를 당했고 대형아울렛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을 때 변호를 맡아 승소를 한 적이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이 분이 감사하다며 5백만원을 준비해왔었다고 한다. 그 순간이 바로 위의 고사처럼 모야금(暮夜金)이 놓인 순간이었던 것이라고 회상했다. 휠체어를 타고 의뢰인에게 커피한잔을 대접받고 돌려보냈던 사건을 이야기했다. 강병훈 지부장은 크리스천이 당당하게 살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싶어 했다. 아마도 많은 크리스천들이 비리사건에 연루되 개신교의 이미지를 훼손하는 사건이 연일 언론에 보도되기 때문이 아닐까. 그는 언제부터 변호사의 꿈을 키웠을까. 고등학교시절 철학,역사와 같이 인문학에 관심이 많았다. 이런 성향과 부모님의 권유로 법대 진학을 최종 결정하게 된다. 하지만 고3 시절부터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고, 예수님을 만나면서 신앙생활을 본격적으로 하게 되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고3에는 공부는 열심히 하지 않았다고 한다. 어찌 보면 고3때 무슨 신앙생활이냐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강병훈 지부장은 당시 고3 시절을 돌아볼 때 후회하지 않고 그 시절 교회에 나가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을 인생의 터닝포인트로 기억했다. 한 해 더 재수를 하고 법대에 진학하게 된다. 대학시절 ‘1급살인’이라는 영화를 보고 변호사의 꿈을 점점키워갔다. 법률공부도 적성에 맞았다. 마침내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법조인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공익법무관으로 대체 복무를 하면서 현재까지 법률구조공단에서 변호사로 외길을 걸어오고 있었다. 또 틈틈이 미국법률에 대해 공부해 박사학위를 받은 미국법 전문가다.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에서 후진을 양성하는데 도움이 되는 삶을 살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강병훈 지부장에게 변호사로서 어떤 보람이 있을까. 그는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 가장 큰 보람이라고 했다. 강병훈 지부장은 이번 ‘7MM DAY’ 탐방을 실제적으로 준비했다. 학생들이 방문한다고 과자와 음료를 준비해주었고, 점심때 학생들과 탁구도 함께 치며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추고자 노력했다. 그는 교회 주일학교에서 12년째 중고등부 교사로 섬기고 있었다. 말도 잘 듣지 않지만 그 시간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는 것 같아서 의미 있고 좋다고 했다. 오늘 탐방을 온 학생들에게 마지막으로 한 마디 조언을 해달라고 했다.


“저는 변호사가 된 것을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습니다. 변호사가 되는 친구들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내 전문지식으로 다른 사람을 도와준다는 것에 보람이 있습니다. 아주 다양하게 일 할 수 있는게 변호사에요. 관심 있는 분들은 로스쿨에 가서 변호사가 되면 좋겠어요. 오늘 반가웠어요.”


탐방을 많이 다녀봤지만 이렇게 세심하게 하루를 준비해서 진행해준 탐방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권위적이라기보다 겸손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마지막 조언을 들으니 본인이 몸담고 있는 변호사라는 직업에 강한 자부심이 묻어났다. 그런 모습을 보고나니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된다. ‘나는 교사로서 다른 사람에게 이 직업을 자신 있게 권할 수 있을까?’ ‘나에게는 교사라는 직업에 어떤 자부심이 있는가?’ 학생들뿐 만 아니라 교사인 나에게도 의미깊은 시간이 아닐 수 없다. 마지막 인사로 “저도 오늘 배우고 느낀 것 학생들에게 겸손하게 잘 가르치겠습니다.”라고 인사하며 법률구조공단을 나섰다. 강병훈 지부장은 우리가 만나고 싶은 소명인이었다. 다시 한 번 강병훈 법률구조공단 인천지부장과 관계 직원 여러분의 모두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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